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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망가는 사랑

사랑에 관한 한
나는 어떤 것도 상속받지 못해서
팔도 없이 껴안고 손도 없이 붙잡으려 했어

빛에서 어둠만을 도려낸 듯
검정보다 검은 네 얼굴을
나는 닫힌 눈꺼풀 안의 눈으로만 보았지

세상에 없던 방식으로
벼락이 사랑스러운 이유만큼 너를 보듬고 싶었는데,

강물이 음악이 된 그때 그날
나의 눈물과 봄과 내일을 주고서라도
누군가의 두 팔을 빌려왔더라면
작은 가슴이라도 빌려왔더라면

메마른 네 그림자를 가질 수 있었을까

더 이상 다르게 올 수 없는 너를
우주처럼 슬프고 자정처럼 아름다운 너를

빗방울 지는 소리에 묻지 않아도 되었을까,

사랑에 관한 한
나는 아직 너에게
나를 잊을 권리를 주고 싶지 않은데

이운진, 도망가는 사랑